제8회 진주같은영화제에 놀러오세요


진주같은영화제 자원활동가 정수진 씀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만날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게 진주 같은 영화제가 그러하다. 처음 자원활동을 모집한다는 글 을 본 순간부터 “이건,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진주 같은 영화제와의 만남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이 후기는 “영화”에 대한 후기가 아니라, “영화제” 에 대한 후기라서 길어질 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진주 같은 영화제” 라. 이름부터가 정말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영화제를 더욱 윤이 나게 닦아서 사람들 앞에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제 진행 상황이 금전적으로나, 인력적으로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고, 심지어 작년엔 혼자서 이 모든걸 진행하셨다는 걸 알고 정말로 놀랐다. 이렇게 수고스러운 일을 왜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그저 이 영화제를 “즐기려고” 하는 것인데, 이런 미디어사업을 업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서 더욱 영화제에 욕심이 생겼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기간에 사실 담당하고 계신 준성쌤은 다른 사업들로 출장이 잦아졌고, 원격으로 서로 소통을 하며 일을 진행해 나갔다. 사실 처음엔 많이 낯설었던 미디어센터도 마치 내가 원래 일 하던 곳 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친숙해졌고, 멀리서 업무를 주고 받는 일도 재미있었다.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일 같은 생전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하면서 부족한 점이 많았을 텐데 언제나 칭찬을 해주시고, 수동적으로 단순 노동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일을 하다보니 더욱 즐겁게 했던 것 같다.

영화제가 열흘 정도 남았을 때, 우린 홍보에 대한 방법을 생각했고 준성쌤의 아이디어로 “나무안내판”을 하기로 했다. 실제로 주말을 이용해서 다 같이 재활용 할 수 있는 “나무 판”을 찾으러 나섰다. 그날 아침엔 비가 심하게 쏟아졌지만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말짱히 그쳤다. 하늘에서도 우릴 돕는구나 생각했다. 직접 자르고 직접 색칠하고 직접 글씨를 넣으면서 사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들기보다는 모든 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완성 된 나무안내판은 정말로 최고였다.

2010/08/29 - [영화제를준비하며] - 진주같은 영화제 안내판 제작현장!

미디어센터에 하나 둘씩 자원활동을 온 사람들이 늘어가고, 점점 축제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간디 마을학교 수업 왔다가 합류한 찬욱이,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하고 일을 도와주러 온 나눔이, 준성샘의 친한 동생 준용씨, 그리고 자봉은 아니지만 모든 일에 먼저 나서서 도움을 준 은주쌤, 멀리서 도와주러 온 영화모임 회원 분들까지! 다들 하나 된 마음으로 영화제를 준비해 나갔다.

영화제가 진짜로 다가오고,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겼다. 상영을 위한 상영본을 만드는데, 컴퓨터가 말을 안 듣는 것이다. 다 만들어 놓은 상영작들이 중간에 소리가 안 맞거나, 화면이 튀거나, 정지되는 일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준성쌤과 찬욱이가 밤을 새면서 계속 상영본을 다시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만들고…… 날이 가면 갈수록 준성쌤의 얼굴은 검은색이 되어갔다. 그리고 점점 다들 초월의 경지(?)로

2010/09/01 - [영화제를준비하며] - 진주같은 영화제 단체T 가 나왔습니다!

이제 영화제 당일.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영화제를 찾아주고, 독립영화제 관심을 가지게 되길 바라면서 막판 홍보에 박차를 가했다. 다 같이 가좌동 일대를 돌면서 포스터 부착과 리플렛 배포를 하면서 더욱 열심히 홍보를 했다. 그리고 첫 날 첫 상영인 11시 여성단편 상영 때 많은 사람들이 와 주었다. 실내 상영들을 무사히 마치고 야외상영을 준비를 시작했다. 야외에서 넓은 무대가 있고 객석이 있는 곳에 오니 두근두근 울렁울렁. 내가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개막식 공연은 경상대학교 밴드인 완드와, 서울에서 날아온 랩 하는 화난해바라기의 공연이었다. 잔잔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밴드의 공연을 듣고, 이제 익숙해진 “화난해바라기” 찬욱이의 공연을 신나게 즐겼다! 그리고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상영을 시작했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인디 밴드 레이블인 “루비살롱” 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다큐를 보면서 진주 같은 영화제도 이런 재밌는 다큐가 나올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첫날이 지나가고,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이제 일정에 익숙해 져서 그런지 여유도 즐기면서 즐겁게 보냈다. 낮에 실내상영을 마치고, 야외의 “땅의여자” 상영. GV로 소희주씨께서 참여해주셨다. GV진행 하셨던 준성샘도, 와주신 소희주씨도 정말로 보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는 말씀에 뿌듯해졌다. 오셨던 관객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겠지, 그 사람들은 다시 이런 독립영화를 찾아오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날, 정말로 보고 싶었던 영화 회오리 바람을 시작으로 오전 상영을 시작했다. 첫날 저녁에 왔던 준성쌤의 후배 분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리는 “태풍” 이 올라온다는 말에 긴급 회의를 했다. 오후에 폐막식. 마지막 야외상영 “경”을 앞두고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경상대 야외 상영장에서 미디어센터까지 일렬로 서서 안내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0/09/05 - [5일 : 진주같은 마지막] - 폐막식 장소를 실내로 옮기는 작전에 들어가다!

급히 변경된 일정에 당황하는 분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안내했고, 미디어센터의 “인디씨네” 는 꽉 찼다. 야외상영보다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꽉 차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고, 비가 안 왔지만 마지막 상영을 실내로 바꾼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잔잔한 음악의 공연이 끝나고 상영이 시작되었지만 계속 해서 사람들이 왔고, 마지막 날 했던 거리 홍보를 처음부터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충분히 잘 했다고 생각했다.

영화제가 끝났지만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던 것 때문인지, 계속해서 머릿속에 영화제 생각만 맴돌고 있다. 이 후기를 마무리 지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긴 후기를 쓰고 있다. 사실 너무 쉽게 일상으로의 복귀를 하기엔 내 삶에서 너무 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고, 진짜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었다.

분명히 아쉬운 점도 많지만, 아쉬운 것을 생각하기엔 내 머리는 아직 영화제 여운을 느끼기에 벅차서 거기까지 생각 할 수가 없다. 다시 또 기회가 된다면 이런 행사에 꼭 자원활동을 참여할 것이고, 내가 느낀 이 성취감과 행복감을 다른 사람도 꼭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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